[차이나 어텐션] 시진핑의 후계자

중국 전문가 강병환 박사의 중국을 보는 눈 '차이나 어텐션'

강병환 논설위원장 승인 2021.04.29 19:12 | 최종 수정 2021.04.29 19:15 의견 0
시진핑 주석 (사진=중국 정부 홈페이지)


중국 굴기는 크게 세 개의 시간 마디를 가지고 있다. 이른바 ‘세 개의 백 년’이다.

중국 공산당 창당 백주 년이 되는 2021년 7월까지 ‘전면적 소강사회(全面建成小康社會)’를 완성하여 전 인민이 중산층 시대로 진입하고, 인민해방군 창설 백 주년이 되는 2027년까지 현대화된 강군 건설을, 특히 최소한 동아시아에서만큼은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군대건설을 목표로 삼고,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명실상부하게 미국과 맞먹는 현대화된 사회주의 강국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30년은 중국 굴기의 성공 여부가 달린 중요한 시기라 하겠다.

중공은 이 삼십 년을 ‘신시대’로 규정하였다. 중공 당장에 삽입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사회주의 사상’도 이런 맥락에서 산출된 것이다. 신시대는 다시 15년씩 두 단계로 나누고 있다. 2021년부터 2035년까지 15년간 기본적인 사회주의 현대화를 완료하며, 이 기반 위에서 다시 15년을 분투하여 건국 백 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부강, 민주, 문명, 화해의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완성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세 개의 백 년’ 중 ‘건군 백 년’을 제외한 ‘두 개의 백 년’은 장쩌민(江澤民) 시기에 중국의 과업으로 이미 확정된 것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사진=CRNTT)


2022년 가을이 되면, 시진핑은 10년의 임기를 채우게 된다. 4세대 지도자 후진타오(胡錦濤)나 3세대 지도자 장쩌민(江澤民)의 관례에 따른다면, 지금쯤 시진핑은 후계자를 선정하고 물러날 준비를 해야 할 때이다. 물론 중공 19대(2012년,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열린 그다음 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헌법을 수정하여 국가주석에 관한 임기 규정을 삭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산당 당장에도 총서기직에 관한 임기 기한을 규정해 놓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막을 법률적 장치는 없는 셈이다. 설령 그가 2035년까지 집권하더라도 그의 나이는 83세에 불과하다. 미국을 보면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니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나머지 '두 개의 백 년'을 위해 중공 20대(2022년) 이후 계속해서 중국을 이끌어 나가는 만년 총서기로 지낼 것인가.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덩샤오핑(鄧小平) (사진=CRNTT)


공산당 역사에서 후계자(接班人, 접반인) 제도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접반인이라는 단어 자체도 마오쩌둥이 선택한 용어다. 그는 스탈린의 실패를 거울삼아, 류사오치(劉少奇), 린뱌오(林彪), 왕홍원(王洪文), 덩샤오핑(鄧小平)을 후계자로 정했다가 최후에는 화궈펑(華國鋒)을 후임으로 바꾸었다. 덩샤오핑은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즈양(趙紫陽)을 후계자로 지정했다가 다시 이들을 실각시키고, 천안문 사건을 계기로 장쩌민(江澤民)을 택했다. 특히 1992년 중공 14대에서 덩샤오핑은 중국의 차차기 지도자로 후진타오(胡錦濤)를 선택했다.

시진핑 시기에 들어서 현직의 최고지도자가 차차기의 지도자를 선택하는 당의 잠재적 규칙인 격대지정 접반인(隔代指定接班人)제도나, 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은퇴한다는 칠상팔하(七上八下) 등의 관례는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시진핑이 인사 제도의 관행을 깨뜨렸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시대와 국가가 필요로 하는 경륜과 자질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먼저 지방과 중앙에서 자질과 경력을 갖추는 것은 최고지도자의 필수항목이다. 후진타오는 공청단과 구이저우(貴州), 티베트 등지에서 경험을 쌓고 다시 중앙에서 관록을 쌓았다. 시진핑도 국무원 부총리이자 중앙군사위원회 비서장인 겅뱌오(耿飈)의 비서로 일하다가,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 푸젠, 저쟝, 상하이의 당서기를 역임했다.

시진핑은 2012년 총서기가 되기 전까지 중앙에서 4년간 최고지도자 훈련을 쌓았다. 중앙당교 교장, 국가부주석, 군사위 부주석을 겸임했다. 이는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되기 전 경험하는 직위다. 물론 이러한 전통은 2018년 헌법 수정으로 인해서 약화한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중공 19대(2017년) 이후, 정치국 위원의 천시(陳希)가 중앙당교의 수장이 되었다. 이는 정치국 상무위원이 중앙당교의 교장을 겸하는 전통을 30년 만에 변경한 것이다. 또한, 중앙군사위 부주석, 국가 부주석이 된 인물은 다음번 중공의 최고 지도자가 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국가 부주석은 저승사자라 일컬었던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왕치산(王岐山)이다. 그는 1948년생으로 고령이다. 중앙군사위 부주석도 일흔이 넘은 장여우샤(張又俠, 1950년)와 쉬치량(許其亮, 1950년)으로 이들은 후계자와는 비교적 거리가 멀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중국의 중요 핵심 직위에 관한 인물 선정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후춘화(胡春華) (사진=CRNTT)


과거로부터 내려오던 여러 인사(人事) 전통을 시진핑 시기에 들어와 파괴한 것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도 중국의 최고권력 후계자 구도에 있어서 눈여겨볼 점이 발생했다. 지난 3월 양회에서 39년 동안 이어져 오던 전인대 조직법을 수정한 것이다. 특히 중국의 핵심 지도자급 인사 예를 들어 부총리, 국무위원, 국가 부주석, 군사위 부주석의 임면 또는 해임은 매년 봄에 열리는 전인대의 표결을 통하지 않고서도, 2개월에 한 번씩 열리는 전인대 상무위원회의 비준이면 가능하게 만들었다. 표면적으로는 전인대의 권한을 확대한 것처럼 보이나, 보는 시각에 따라서 중공의 미묘한 권력 계승의 장치로 볼 수도 있다. 이는 중국의 후계자 제도 변화에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다시 말해 중국을 이끄는 핵심 고위층 직위의 상하 이동은 이제 수시로 가능해졌다. 어쩌면 이것은 미래의 후계자를 발탁하는 시진핑의 설계도 일지 모른다.

천민얼(陳敏爾) (사진=CRNTT)


현재 중공중앙 정치국 위원 25명의 인물 중 1960년대 출생은 3명뿐이다. 천민얼(陳敏爾, 1960년), 딩쉐샹(丁薛祥, 1962년), 후춘화(胡春華, 1963년)가 그들이다. 이들 셋은 언제라도 두 달에 한 번씩 개최되는 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국가부주석 혹은 군사위 부주석으로 임명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만약 이런 직위에 이들이 임명된다면 시진핑의 후계자는 이들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후춘화는 후진타오가 시진핑에게 격대(隔代) 지정한 후계자로 알려져 있다. 어쨌든 시진핑의 3선 연임 여부도 내년 가을이면 모두 결정된다.

딩쉐샹(丁薛祥) (사진=EAST RAY)


중국의 굴기는 우리에게 위협이자 기회다. 역사적으로도 이웃 나라인 중국은 우리의 협력 대상이자 경계의 대상이기도 했다. 중국이 기회와 협력의 대상이 되는 데는 중공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역할도 그만큼 중요하다. 향후 벌어질 중국 지도층의 인선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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