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복 정장 디자이너 김리을

-김리을의 눈으로 바라보고 김리을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문현아 승인 2021.07.27 15:46 | 최종 수정 2021.07.27 15:47 의견 0
김리을 디자이너 [사진=김리을 디자이너]

한복에 문화를 입히다. 21세기 한복을 만들다. 디자이너 김리을은 'ㄹ'과 '한복'으로 한국을 알리는 디자이너다. 전통 한복 원단과 손 자수를 그대로 살린 한복 정장부터 청바지와 함께 입을 수 있는 저고리까지 가장 현대적인 한복을 만든다. 21세기라는 무대 위에 김리을이 만든 퓨전 한복이 걸어 다닌다. "참 멋진 옷이군요!" 한국인도 외국인도 각자의 넘쳐나는 감흥으로 감탄하지만 그가 만든 옷자락들은 작품을 넘어 문화이기에 지구 반대편 어딘가의 카페에서도 한국과 한복을 주제로 한 대화를 만들어내고, 한복에의 경험 빈도가 낮은 이 땅의 젊은 세대에게 아이돌의 멋진 영상 속 퍼포먼스와의 조화가 남긴 여운으로 새로운 영감을 고무시킨다. 김리을의 눈으로 바라보고 김리을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디자인하다'를 우리는 "문화"로 전달받고 있다.

디자이너 김리을은 옷을 디자인함을 넘어 '문화를 디자인하고 있다'라는 말이 조금도 손색없이 느껴진다. 전통과 청년이라는 조화 자체도 그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기분 좋은 놀람, 또는 계속 지켜보고픈 그리고 동참하고픈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그의 작품을 보고 한국에 관심 없던 외국인 한 명이 한복을 언급하고 한국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문화 디자인'이라는 그의 말은 자칫 한류의 화려함이나 경제적 가치만을 좇기 바쁜 우리에게 잠시 멈춰 침착하게 기본 다지기를 해봄이 좋겠다는 건강한 일깨움을 준다. 본지는 김리을 디자이너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편집자 주>

김리을 디자이너의 작품

Q. 김리을 디자이너에게 '디자인하다'라는 의미는 '김리을의 눈으로 바라보고, 김리을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언급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의미에 대해 설명해 달라.
나는 '디자인하다'라는 용어를 새롭게 해석해서 활동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그림을 그리다, 설계하다'라는 의미가 아닌 '김리을의 눈으로 바라보고 김리을의 방식으로 표현하다'로 의미를 부여하고 행동하는데, 이는 철저히 주관적이라는 한계에 머물 수도 있지만 세상에 없는 나 김리을의 사고, 태도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가치 형성이기에 '디자인'하면 따라붙는 '창조하다'라는 표현과 매우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김리을'은 지구상 하나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 진행 과정 모두가 유일무이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여기 한국, 그리고 지구 반대편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인정해 주는 나의 작품들도 바로 그렇게 탄생했다.

Q.어떤 계기로 의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또 어떤 연유로 한복을 응용한 정장 영역으로 활동을 집중하게 되었나?
한복을 응용한 작품을 처음 만들었을 때 나는 본래 디자인을 전공한 상태가 아니었다. 학창 시절을 전주에서 보낸 나는 한창 전주 한옥마을이 붐을 일으키던 당시 그 공간에 있었다. 한복을 대여해 입고 한옥마을을 관광하던 한 외국인에게 왜 한복을 입고 있는지 물었을 때 "원단이 예뻐서"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 그는 "하지만 불편해서 당신은 입지 않는군요."라고 이미 그의 생각이 결론지어진 질문을 했다. 약간의 충격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19세기 의상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빠른 현실 인정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 도시 생활에 보편화되어 있는 서양 정장 양식을 빌려 새로운 한복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김리을 디저이너의 작품을 입고 있는 이동준 선수 (사진=김리을)

Q. 브랜드명 '리을(ㄹ)'의 의미는 무엇인가?
장기 세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만난 서양 친구들은 수많은 언어 중 유네스코 최고 평가를 받은 훈민정음의 가치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글을 구성하는 철자들에 대해서는 생소해 해서 한 예를 들어 주었다. "세계 공용의 아라비아 숫자 '2'를 닮은 이 글자 'ㄹ'은 한글의 네 번째 자음으로 영어의 'R'이나 'L' 소리가 난다." 이에 친구들은 이런 연상 논리를 빌린 나의 설명에 즐거운 호기심으로 반응했고, 나는 우리 고유의 것이 600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이 시대를 사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숫자 2와 결부되어 유용한 정보로 저장될 것이라는 점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내가 그 외국인 친구에게 낯설기만 한 한글을 최대한 이해시키고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설명했듯이 나의 작품들도 그렇게 세계에 제시되고 수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브랜드명을 '리을(ㄹ)'이라고 지었다.

김리을 디자이너 작품

Q. '리을'의 대표 슬로건이 "한복에 문화를 입히다"이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문화에 대해 정의 내릴 수 있는 범주는 매우 광범위하다. 단순하고 친근하게 생각하자면 '한국 가정집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는다'라는 실례를 들 수 있겠다. 우리에게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 더 복잡하기만 할 정도로 당연하고 친숙한 습관이지만 서양 외국인들에게는 독특하고 고유한 한국의 '문화'가 된다. BTS가 미국 인기 프로그램 'The Tonight Show Starring Jimmy Fallon'에서 경복궁을 무대로 리을의 퓨전 한복을 입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할 당시, 실시간으로 그 영상을 접하던 서양인들은 이런 댓글들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저 의상 참 독특하다. 무슨 옷이지?", "한국 전통의상을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거래", "와! 멋진데", "그래, 동양적인 기운이 풍긴다 했어", "나 저렇게 생긴 옷 봤던 것 같아. 그게 한국 전통복식이었구나" 등 20만 명의 시청 속에 한복이라는 단어는 랜선의 러시아워(Rush Hour)를 이루고 있었다. 이렇듯 그날의 한복은 의·식·주의 의(衣)인 기능적 성격을 넘어 범 세계적 문화가 되고 있었다. 아이돌이 입고 휘날린 퓨전 한복 한 자락에 한국이라는 근원적 대상이 문화 우주를 형성했던 것이다. 앞으로도 나의 한복 작업은 수익창출 이전에 이러한 개념, 가치 디자인이 될 것이다.

김리을 디자이너의 작품

Q. 리을의 퓨전 한복을 통해 가장 부각시키고자 하는 전통 한복의 멋은 무엇인가?
전통 한복의 외형적 멋을 크게 두 가지 면으로 파악해본다. 하나는 라인의 멋, 다른 하나는 원단의 멋. 리을은 두 번째 멋인 원단에 초점을 맞추었고 자카드 실크, 색상 배합, 손 자수 디테일 등의 전통 요소들을 21세기 수트에 접목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한복이 명절 때만 입는 특수 복장이 아닌 일상 속 하나의 스타일이 되기를 바란다. 무슨 무슨 '룩(look)'처럼 말이다. 문화는 '사회'라는 망 속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이 노출되고 활용되어야 소멸하지 않는다.

김리을 디자이너의 작품

Q. 오래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이 있었다. 당시에는 약간 억지가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요즘 한류 열풍을 보면 마치 예언과도 같은 표어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이 리을의 향방을 기분 좋게 예언해 본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단지 옷이라는 유형의 아이템으로만 아닌 김리을의 방식으로 풀어나간다는 무형의 개념이 좋은 가치로 다른 분야들을 격려하면 좋겠다. 최근 동아제약의 선택형 맞춤 건강기능식품 광고 촬영을 했다. 그간 주장해 온 '리을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다'를 '거친 현대 생활 속 잃기 쉬운 건강을 맞춤형으로 지켜나가자'는 제품 컨셉에 적용시킨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형화된 틀이 아닌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현실화하는 시도들이 건강하게 많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것이 리을이 미리 내다보고 싶은 장면들이다.

김리을 디자이너의 작품

Q.리을의 작품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타일링해 보고 싶은 해외 셀러브리티는?
개인적으로 운동을 좋아한다. NBA 선수들은 경기장에 입장할 때 깔끔하게 수트 드레스업해서 등장한다. 언젠가는 내가 만든 한복 정장을 입고 등장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전 세계로 중계 송출되는 날을 꿈꾸어 본다.

Q. 디자인 모티브가 되는 한국적 요소들 중 깊은 울림을 주는 내용 하나를 언급한다면.
무수히 많지만 그중 하나로 태극기를 꼽을 수 있겠다. 태극기 네 모서리의 4괘(건곤감리)는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며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인데 처음 만들어졌던 당시(19세기 말)에 비해 상당히 모던하고 디지털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어 놀랍기 그지없다. 이를 활용해 2020 ADIDAS 슈퍼스타 3.1절 커스텀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Q. 김리을의 눈으로 파악하는 것은 '감각', 김리을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행동력'이라고 한다면 이 두 가지에 더해 완전체를 이루는 나머지 한 요소는 무엇일까?
음, 아마도 운이 아닐까 한다. 내 작품을 BTS, 지코 등이 선택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러한 파급력을 형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문화를 알리고자 하는 '진심'도 힘이라면 그것의 지분도 어느 정도는 있겠다(웃음).

김리을 디자이너의 작품

Q. 현재 준비 중인 작업은?
늘 여러 가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가장 가깝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으로는 동아제약과의 컬래버레이션 제품 프로젝트가 있다. 옷에 대한 내용은 아니지만 이것 또한 늘 그렇듯 ‘문화’라는 쪽으로 힘을 실어 진행하기에 긴장되고 기대된다.

Q. 마지막으로 디자이너 김리을을 한 마디로 축약한다면.
많은 이들이 나를 한복 디자이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나는 다시 정리해서 '한복 원단을 가지고 옷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어쩌면 이러한 개념도 나의 작품을 보고 대중이 정해주는 것이 맞다. 어떠한 쪽이든 내 옷을 보고 한 사람이라도 더 한복을 대화의 주제로 삼을 수 있다면 브랜드 리을의 가치는 충분한 것이다.

자신이 디자인 한 정장을 입고 있는 김리을 다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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